작성일 : 12-02-22 10:21
한연선 - 보이는 것(What I see) - 2012. 2. 22~28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0,365  

연. 然 - 蓮 - 緣 - 軟 - 硯 - 延

한. 韓 - 一

달. 月 - 多

연이어 연 - ‘연’놀이

한연선 작가의 이름에는 자연自然에서 친숙하게 보아온 ‘그러할’‘연然’자가 쓰인다. 작가는 7-8년 동안 7-8월에 주로 꽃을 피우는 연蓮과 꾸준히 인연因緣을 맺어왔고, 강렬하기 보다는 은은히 옅은 연軟한 색과 먹을 한지에 천천히 담아왔다. 연蓮을 그리는 작업실의 탁자 위에는 먹을 갈기 위해 물을 담아 두는 연적硯滴이 놓여있다. 작가에게서 연然-蓮-緣-軟-硯은 이렇게 연이어서 따라붙는다. 작가에게 어울리는 같지만 다른 모든 연延연.

보이는 달 - 여러 개의 달

까만 밤하늘에 보름달이 덩그렇게 떠 있다. 나는 방아 찧는 토끼를 찾고, 당신은 눈· 코· 입이 선명한 수수께끼 얼굴을 본다. 여기-저기에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우린 같은 달을 보고, 다른 달을 상상한다. 신기하게도 달은 지구에게 항상 같은 면만을 보여준다. 지구와 달 사이의 자전과 공전이 이런 현상을 만든다지만, 우리의 습관도 한 몫 한다. 달을 보면 항상 특정 자리에 토끼가 쿵더쿵 방아를 찧고 있고, 달의 분화구는 지난 달 보름달과 별 차이 없이 그 자리에 있다. 보이지 않는 달의 표면은 머릿속에 진짜로 그려지지 않는다. 보이는 달과 같을까? 다를까?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보고 믿는 것은 여러 개의 진실 중의 하나다.”

검정 연잎 - 하얀 달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옛말처럼, 혼탁한 저수지에서도 연꽃은 핀다. 하나의 달에 다양한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처럼, 연꽃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적당한 물을 받았다 자연스레 또르르 흘려보내는 연잎의 순리를 좋아하는가? 흐르지 않아 썩어버린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고고함을 추종하는가? 아님 연밭에 어우어진 연잎과 연꽃의 균형 잡힌 조형미를 보고 싶은가? 익숙해진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연잎과 연꽃에 관한 습관적인 생각들을 물려받는다. 송연과 목탄, 그리고 한지를 쓰는 작가의 동양화 감각이 연과 어우러져 이런 일차적인 이야기를 만들지만, 작가의 검정 연잎 뒤로 등장하는 하얀 달이 다음 이야기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전 작업은 목탄으로 그린 연잎 위에 초록색이나 노란색의 점들을 꼼꼼히 그려 넣어 연잎 하나로 허할지도 모르는 공간을 채우고 또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최근 작업은‘허함에 대하여’ 그대로 내어놓는다. 검정 색과 하얀 색으로의 환원.

감각과 생각의 얼개 - 허허許虛

연잎을 그리려고 작가는 여름 땡볕 모기에 뜯기며 연밭을 찾는다. 흐르지 않는 물속의 연잎과 연꽃을 흐르지 않는 이미지로 꼼꼼히 스케치한다. 작가는 연잎과 연꽃, 그리고 주변의 풀잎까지 자연에서 보이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스케치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돌아와 앉은 작업실에서 스케치된 것들은 자연 속 그대로로 재현되지 않는다. 현장의 스케치는 객관적인 눈의 감각을 살려 진행되지만, 화폭 속 이미지는 주관적인 생각을 실어 변형된다. 연밭의 정적에 빠져들어 실제 연을 스케치하는 자세, 현장감 너머 작가의 생각 속 게슈탈트에 의해 변형하려는 의지, 그리고 여기餘技 너머 작가의 정신세계를 담담히 수묵화로 그리려는 의도. 작가의 연하고 달 작업은 이렇듯 진경산수眞景山水, 관념산수觀念山水, 그리고 문인화文人畵 등과 미묘한 얼개를 공유한다.

눈으로부터 시작된 감각과 머리에서 완성된 생각의 얼개는 수수한 연잎과 달에서 허虛하게 얽히고 읽힌다. “연의 모습을 보고 그려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그대로 그리고, 특별히 구석구석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허하고 싶다는, 비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긴다. 내일이 되면 꽉 찬 달이 슬금슬금 비워져가듯, 오늘에 꽉 들어찬 부동不動이 움찔움찔 미동微動하길. 달이 어떻게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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