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17 14:05
김용민 개인전 - 날개 잃은 숲 (2012. 10. 17~23)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473  

김용민 展

 

 날개 잃은 숲 / The Lost Wings of the Forest

 

두 개의 날개(부분)_40x50x120㎝_자연석, 브론즈, 나무_2012

 

 

토포하우스 (TOPOHAUS)

 

2012. 10. 17(수) ▶ 2012. 10. 23(화)

Opening 2012. 10. 17(수) pm 6:00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1관 | T. +82-2-734-7555 | +82-2-738-7555

 

www.topohaus.com

 

 

가시나무새_55x80㎝_나무, 브론즈, 혼합재료_2012

 

 

“ 며칠을 숲에 앉아 있었다 ”

 

김종길/미술평론

 

김용민은 10여 년 동안 소리 없이 미술계에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의 깊이를 가늠하는 작품들이 이번 개인전에 소개되었다. 대부분 야외에서의 자연설치미술이어서 영상기록과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실내전시를 위해 같은 언어지만 다소 다른 형식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야생의 미학을 정제시켜 완결된 조각적 형식을 선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미학적 언어가 다른 방향으로 튕겨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렇게 정제된 것들에서 김용민의 미학을 곰곰이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Big Bird_50x30x180㎝_나무, 브론즈, 혼합재료_2012

 

 

김용민의 세계는 숲에 있다. 그 숲은 자연이라는 ‘바깥’이다. 자연은 문명의 바깥일수도 있고 인류의 바깥일수도 있다. 문명과 인류의 바깥이라 해서 그 바깥이 문명과 인류를 둘러싼 울타리도 아니요, 마을 어귀의 ‘어귀공간’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그 어귀가 마을이 아니라 숲의 어귀이거나 바깥의 어귀라면 말이 다르다. 바깥은 문명과 인류의 안팎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섬처럼 부유하는 미개척의 광야이기도 하고 야생지이거나 사람들이 조성한 공원이기도 하다. 생태비평은 문명과 인류를 구분할 수 없는 동의어로 인식하듯이 숲도 안팎을 구분하지 않는다. 김용민의 숲은 그렇게 구분되지 않는 숲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김용민의 숲이라 했을 때는 어디에나 있는 숲,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지 않는 숲을 가리키는 것이다. 야생이든 인공이든 자연은 ‘생의’(生意:만물을 낳는 이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공이라 해서 자연이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고스란히 김용민의 바깥미술 미학의 핵심이기도 할 것이다.

 

 

불닭_30x30x140㎝_자연석, 철, 혼합재료_2010

 

 

김용민의 바깥미술 10년의 활동은 1980년대와 90년대의 바깥미술회 활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2000년대 이후의 지향점과는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을 이룬다. 바깥미술회가 대성리에서 자라섬으로 이동한 2005년부터 김용민의 작품들은 섬의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수행성(performativity)의 태도를 유지한다. 바깥미술회가 처음 자라섬에 갔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야생지였다. 그러나 한 해가 다르게 섬은 개발논리에 포섭되었고 급기야는 캠핑장과 연계된 관광지로 돌변했다.

 

2005년의 <길>은 한 겨울의 야생지에 새긴 자연의 순수한 결과 같았다. 겨울 섬의 피부를 드러내듯 그의 작업은 얼어있는 섬의 내부를 슬쩍 내보이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2009년의 <얼음연못>은 작업의 상징성이 크다. 작은 웅덩이 연못을 파고 물과 꽃, 갈대를 넣고 심었으나 하룻밤 자연이 그것을 얼려서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와 겨울 날씨의 합일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는 자라섬에서 ‘길’과 ‘얼음연못’을 이야기했다. 그의 ‘길’과 ‘얼음연못’은 인간의 폭력적 인위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끈다. 그런 성찰적 태도에의 메시지가 타자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숲의 소리_나뭇가지_가변설치_2012, Rambda print_60x50㎝_2012

 

 

김용민이 추구해 온 바깥미술 미학의 수행성은 자라섬 내의 특정한 장소들에서 실현되었다. 그에게 그의 작품이 형성되는 장소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과 장소는 닭과 계란처럼 순서를 다툴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작품구상의 상상력이 장소헌팅을 견인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장소가 먼저 작품의 구상을 견인하는 역전현상도 일어나는 것이다. 자연미 가들도 그렇듯이 바깥미술회의 작가들도 ‘분발하지 않기’, ‘어슬렁거리기’의 태도로 며칠을 걷거나 노닐면서 풍경과 사유의 ‘일여(一如)’를 준비한다. 그런 뒤에야 작업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나아가는 것이다.      

 

 

방랑의 시작_자연석, 나무_가변설치_2010, Rambda print_60x50㎝_2012

 

 

“In Nature”

 

자연을 닮은 작업을 하기위해 자연 안에서 서성거렸지만 드러내기의 욕망을 아직 비우지 못했다. 작품에 관한 나의 이기심이 자연과 아직 화해를 못하고 있는듯하다.

자연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지만 감아버린 눈과 닫힌 귀를 열기가 그리도 힘들 줄이야...

한여름 숲, 겨울 강변 끝없이 닥쳐오는 자연의 한계상황에서 예술이란 논리로 자연 앞에 서지만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이 초라할 만큼 구차하다.

인간을 논리,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지점들이 너무 많기에 이성이란 논리로 자연 안에서 하는 나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아직 모호하기만 하다.

자연과 관계한다는 것, 장소와 대화한다는 것이 그곳에 무엇인가 형상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조금 깨달았을 뿐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숲이 작품이 되고 작품이 숲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자연을 닮는 법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런 숲과의 만남을 위해 나는 다시 바깥으로 나간다.

2012-작가노트중

 


 
   
 

select count(*) as cnt from th_login where lo_ip = '54.162.105.6'

1017 : Can't find file: 'th_login.MYI' (errno: 2)

error file : /board/bbs/board.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