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 개인전 - 무쇠집
토포하우스 제 1전시실
2024.12.18 ~ 12.24
작가노트:
검고 차갑다.
모서리 어느 한 면, 날카롭게 빛도 나고.
철옹성 같은 집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물에 담가지고,
불에 달궈지고, 두드려 다듬어져 갔을까?
가족이 낯설고, 홀로 이상해서, 서있는 곳곳, 늘 다름의 감정으로 떠돌았다.
사람에게 집은 안식처일 텐데.
20대의 끝, 나는 죽기 일보 직전이 돼서야 오랜 집을 나갔다.
가능한 먼 곳으로, 누구의 의식도 없이, 숨 쉴 곳을 찾아, 가는 곳마다 얼굴을 바꾸고,
새롭게, 또 새롭게 살았다.
어느 집에서도 2년 이상 살아 본 적이 없다.
짧으면 3개월, 6개월.. 어느 해는 집이 세 번 바뀐 적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때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상하게도 2년 이상 머물지 못한다.
전전하며 부딪혀 얻은 경험들은, 손으로 마음을 빚어, 켜켜이 용기를 더해, 다듬어 쌓아갔다.
이동 할수록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한계는 의식할수록 갇혀버리니 흐르도록 하였고,
혼란스러울수록 내면에 귀기울여 중심을 잡아갔다.
계속된 변화 속에서도 달라지지 않던 건,
종이위에 감정을 풀어 내던 손.
나에게 집은 장소도, 사람이 사는 곳도 아니다.
안식처가 집이라면, 나는 이미 변치 않는 집을 소유했다.
손으로 지어진 무쇠집.
발길이 닿는 곳, 머물며 내가 그릴 수 있다면, 그곳이 내 집이다.
나는 무쇠집을 가졌다.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는 무쇠 집.
손으로 지어진 집이야말로 나의 안식처이고 모든 것이다.
지금도 계속 다듬어 쌓아 가고 있다.
무쇠의 마음으로 무겁게, 천천히,
한 장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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